18년만의 고해성사
그날 미사를 갔는데 한 이십 분 일찍 도착한 데다가
그냥 고해성사를 할까, 하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순순히 들었다.
가보니 고해성사 줄도 길지 않았다.
나는 그 줄에 서서, 문구를 생각해 두었다.
고백한지 18년 만입니다.
무슨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선언문이라도 발표할 것처럼 연습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제발 우리 성당의 나이 드신 신부님하고 젊은 신부님중에
나이 드신 신부님이 고해실에 앉아 계시길 바랬다.
왜냐하면 젊은 신부님은 너무 젊으셔셔 한마디로 알기는 뭘 알까?
이런 오만한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거 이미 너무 맨숭맨숭해져서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꼭 번지점프를 하러 가는 기분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젊은 신부님이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지. 그래도 신부님인데, 싶어 무릎을 끓고 앉아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고백한 지 18년 만입니다, 하는데 맙소사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것도 뜨겁고 힘차게 펑펑 나오는 것이다.
그 고해실에 무슨 이상한 요술스프레이를 뿌려 놓은 것처럼
나는 어느덧 작년 겨울 18년 만에 혼자 성당에 찾아가 하느님 앞에 엎드려,
하느님 저 왔어요, 항복해요, 내 인생에 대해 항복합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닌가 봐요,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 항복합니다.
엉엉 울던 그때의 심정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아까 저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와 앉기까지 1분, 길어야 2~3분뿐이었다.
내가 설사 아무리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 친들,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울면서도 들었다.
너무 울어서 고해가 진행이 안 될 정도였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고해실에 들어와 보니
크리넥스 통이 있는 것 아닌가.
아니 그럼 18년 만에 회개하는 나 말고도 사람들이 고해실에
들어와 진짜 우는 모양이지.
18년 전에도 크리넥스 통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 내가 하도 우니까
신부님이 보기 딱하신지 “우선 거기 휴지로 눈물을 좀 닦으십시오.” 하셨다.
눈물을 닦고 코를 팽팽 풀면서 또 한편으로는 회개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입으로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젊은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참 어려운 길 오셨습니다. 18년 만이라고 하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여기까지 오는 발걸음으로 이미 당신은 죄 사함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18년 동안 걸어온 길이 멀고 고단한 길임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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