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2007년 11월 24일 (신앙고백)

조바오로 2007. 11. 25. 00:00

2007년 11월 24일 (신앙고백)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루카 9,18-20)

 

[새천년복음화연구소 변진흥 소장]

어느 신심단체에서 ‘과연 하느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자매는 ‘나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라고 했고, 어떤 형제는 ‘나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라고 했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과 평화, 은총과 복을 주시는 분으로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풍토는 기복적 요소를 물씬 풍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예를 들면서 다시 제가 함께하고 있는 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과연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이분들의 대답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압축되었지요. 물론 정답입니다. 구원 신앙의 핵심을 꿰뚫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이런 질문을 제가 받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도구로 쓰시는 분’이라고요. ‘그분께서 언제 어떤 모양의 도구로 쓰시건 나는 그냥 그분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물속에 던져지건, 불속에 던져지건, 자갈밭에 던져지건 ‘내가 왜 그곳에 던져지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그냥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좋아합니다. 이 기도의 지향처럼 평화의 주님께서 쓰시는 평화의 도구가 되어 미움을 사랑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어둠에 빛을 비출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만 있다면 들어오는 복을 걷어차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더라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글]

하느님은 저에게 어떤 분이신지요? 제가 깜깜한 절망 중에 빛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미움과 분노를 잠재워주셨으며 낙담과 좌절에서 일어서게 해 주셨습니다. 그 뒤로 고리타분했던 성경구절이 지친 삶의 생명수가 되고 지루하던 미사가 제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저를 구해주신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묵상에서 신부님은 ‘하느님은 구원자이시며 또한 나를 도구로 쓰시는 분’이라고 고백하십니다. 그리고 쓰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충실한 도구가 되시고자 합니다. 비록 불쏘시기가 되어 불속에 버려져 없어지더라도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당신을 평화의 도구로 쓰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신부님께서는 “바오로야! 하느님께서 너를 구원해 주셨으니 이제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따라야 하겠지만요 제 뜻대로 이것저것 하고 싶고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는 핑계로 주저주저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저를 맡겨보고 싶습니다. 저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움직이는 도구가 되어 보고 싶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저를 받아주셨으니 어디로 이끄시던지 제가 따라야 하겠지요. 하지만 불은 뜨겁고 물은 차다고 피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의지와 계획으로 꽉차있는 저를 비워주십시오. 언제나 선하신 하느님의 도구가 되도록 저를 열어 주십시오. 제가 따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