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2007년 6월 3일 (기도)

조바오로 2007. 6. 3. 11:39

 

2007년 6월 3일 (기도)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마르 9,14-­29)

[성공회 나눔의 집 협의회 김홍일 신부]

한때 기도를 나의 계획과 관심과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하느님을 움직이는 주술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하실 수 있으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신 성경 말씀은 기도에 대한 나의 그 같은 믿음과 신념을 보증해 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다른 한구석에는 좌절된 기도의 경험들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의심과 반문이 늘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야 기도란 나의 계획과 관심과 욕구의 충족을 위하여 하느님을 움직이고 조정하는 주술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복종하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비운 그 공간에서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이든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기도의 응답이 내가 바라는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내가 순종함으로써 이루지는 것임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늘 믿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신다는 믿음,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알고 계시다는 믿음, 하느님께서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깊고 크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믿음. 기도를 통하여 내 마음 안에 그 같은 믿음이 자라나고, 그 같은 믿음의 기초 위에서 드려지는 기도 속에서 하느님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수많은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가운데서도 내 안에 깊이 잠재되어 내 마음과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더러운 영과의 싸움은 죽는 날까지 안고 가야 하는 기도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는 그 무엇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묵상글]

지난 20년간 무상으로 사용하던 우리기관 사무실 임대계약이 구청과 우여곡절 끝에 파기된 때는 3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새 사무실을 얻는 과정은 고난의 길이었으며 그 3년간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저는 지쳤고 결국 기도하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대 그 순간 구청이 전보다 더 나은 사무실을 얻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의 효험을 본 것일까요?


오늘 신부님의 묵상글에서 알아봅니다.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느님을 움직이려는 기도를 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를 움직이려는 기도를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뜻은 버리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지킬 때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새 사무실을 얻고자 하느님을 움직이려는 기도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의 뜻에 맞는 하느님의 응답이 없다고 기도마저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새 사무실을 마련해 주셨으며 한 곳에 안주하려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깨달음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는 제 기도와 관계없이 오직 하느님 사랑의 결과였습니다.


† 사랑의 하느님! 제 욕심만을 채우고자 하느님을 움직이려고 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새 사무실을 마련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저의 기도를 열어주십시오. 혹시 알아듣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